어느 봄날의 잔잔했던 바다, 연평도 해안에서 앞 날이 창창했던 해군 장교들이 무참히 바다로 잠겼다. 국민들은 누구의 짓인지 밝히고 싶었고 그 분노는 전국적으로 들끓었다. 5개국 조사단이 투입돼 사건의 개요를 파악했고 정부를 포함해 각계층 전문가들이 원인을 밝혔다. 결국 '1호'란 북의 전문용어와 잠수정을 발견했고 북한의 소행이라고 결론내렸다. 북을 적으로 인식하고 안보강화만을 외치는 세력에게 천안함 사태는 그야말로 기회였다. 이후 북과 관련한 대북정책엔 먹구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북에 모든 원조와 민간 차원의 교류를 끊어내는 5.24 조치를 단행했고 천안함 5주기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꽉 막혔다. 영국의 어느 일간지가 "서울 한복판에 구름이 햇빛을 덮고있다"고 표현했듯이 기존의 북에 대한 햇볕정책이 한순간이 역행했다. 정권이 바뀌고 드레스덴 선언으로 평화적 통일을 구현하겠다고 선언하지만 실질적으로 달라진 건 전혀 없다. 천암함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 또한 그대로다. 심지어 5주기를 기념해 나온 사설엔 온갖 여야대립 뿐이다. 천암함이 '폭격'인지 '폭침'인지를 두고, 야권이 폭격으로 인정을 했는지 여부를 두고 침 튀기기 바쁘다. 평화통일 구호를 외치는 정부 앞에 민간차원의 교류나, 금강산 관광 재계, 이산가족 상봉, 정상회담 준비 등의 실제적 노력은 전혀 없다. 그저 해방 이후 각자의 탁상에서 남북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구상만 짜던 모습 그대로다.  

 

   천안함 사태에 대한 인식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더이상 북한의 소행 여부를 두고 얼굴을 붉혀 안보만을 강화할 게 아니라 다시 민간차원의 교류를 시작해야 한다. 민간 차원의 투자나 금강산 관광을 원하는 국민의 의사를 안보강화라는 이유로 계속 저지할 순 없다. 경제적 논리에 입각해 손실여부를 따져 투자를 하는 국민이 있는가 하면 이북의 서러움으로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려는 국민도 있다. 정부가 과거의 사태에 매몰돼 만든 규제 하나로 통일의 시간과 통일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뜻을 강제해선 안된다. 독일은 서, 동독에 양수상들이 분단시절 서신과 스포츠 등 민간인에 의한 교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질감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했지만 이는 결국 국민들에 의한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고 지도부 회의를 거쳐 통일 독일 단일정부를 수립해 현재의 독일을 만들었다. 유신시절 반공논리에 입각한 사고로는 더이상의 진전은 기대할 수 없다.

 

  인식 변화의 주체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시민이 주체가 될 때 정부가 시민행동을 의식하고 구체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한다. 민간 차원의 통일에 대한 움직임과 교류가 활성화되고 정부의 대북외교가 부드러워지면 현상만 답습하는 지금의 대북조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재 통일과 관련한 단체는 전국적으로 80개가 넘는다. 통일을 지지하는 단체가 상당한 시점에서 이들의 연대는 시민들의 안보와 통일에 대한 의식을 변화시킬 힘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사드를 배치하고 북에 대한 안보 강화로 시민들을 보호해줄 수 있다고 하지만 북의 도발엔 사전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 시민의 힘으로 북에 대한 의식을 개선하고 북의 도발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통일을 앞당기려는 의식이 선행돼야 한다. 우직한 황소의 걸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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