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1925), F. 스콧 피츠제럴드
밖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고 해협을 따라 희미한 천둥소리가 들렸다. 웨스트에그는 이제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사람들을 실은 전철은 뉴욕을 떠나 빗속을 뚫고 집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인간의 내면에 깊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으로, 공기 중으로 흥분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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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를 하러 개츠비에게 갔을 때 나는 그의 얼굴에 다시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렴풋이 의심이 생긴 듯한 표정이었다. 오 년에 가까운 세월! 심지어 그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그의 꿈에 미치지 못한 순간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가 품어온 환상의 그 거대한 힘 때문에 말이다. 그 환상의 힘은 그녀를 초월하였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직접 그 환상에 뛰어들어 그 환상이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게 했으며, 자신의 길 앞에 떠도는 모든 빛나는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어떤 정열이나 순수함도 한 인간이 유령 같은 마음속 깊숙이 품은 것은 어찌할 수 없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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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섬이야말로 신세계의 싱그러운 초록빛 가슴이었던 것이다. 이 섬에서 사라진 나무들, 개츠비의 저택에 길을 내준 나무들은 한때 인간의 모든 꿈 중 마지막이자 가장 컸던 꿈에 소곤거리며 유혹했던 것이다.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매혹적인 한 순간 인간은 이 대륙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음에 틀림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해할 수도 없고 원치도 않는 심미적 명상에 빠진 채 역사상 마지막으로 경이로움에 대한 그의 능력과 맞먹는 그 무엇과 대면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 곳에 앉아 그 오랜 미지의 세계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개츠비가 부두 끝에 있는 데이지의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으리라. 그 꿈이 아마 그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저쪽의 광막하고 어두운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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