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이 왔다. 추모문화제 행사를 홍보하는 포스터가 보였다. 유미가 유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건지 검색을 했다. 알아보니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의 8주기 행사라고 한다. 퍼뜩 대학교때 대학로에서 봤던 연극 '반도체 공장'이 생각났다. 같은 내용인건지 다시 검색해보니 맞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거에 한번 놀랐고 유가족들의 한결같은 노력에 두번 놀랐다. 두번 놀라니 마음이 울렸고 피곤한 금요일이었지만 참여하기로 했다.
마음이 뜨끔했다. 추울 것이란 걱정과 검색을 통해서 이름을 알았다는 사실에 홀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학교때 마주쳤던 반도체 공장의 진실과 그때 먹었던 뜨거운 반항심은 온데간데 사라졌다는데 놀랐다. 유가족들의 한결같음에 놀랐던 마음은 결국 내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삼성이란 집단 전체를 미워했던 마음도 지금은 따로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려고 하니 추모제에 집중이 더 어려웠다. 대학교때 연극 반도체 공장을 보면서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홀로 공부했던 날들이 어렴풋했다.
추모 음악을 들으며 한손에 촛불을 들었다. 입김이 계속 나올만큼 추웠지만 벌겋고 맑게 불을 밝히는 초를 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춥다는 기분도 없었다. 유가족들의 인사말을 들었다. 현장에는 2015년도까지 피해를 입은 사망자의 이름과 병명, 소속이 걸린 대형 현수막이 있었다. 그리고 헌화를 할 수 있는 작은 공간과 50여명이 조금 넘는 참여자들이 앉아있었다. 외신의 관심도 군데군데 보였다. 진심으로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 마음 아파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행사는 차분하고 조용히 진행됐다.
결국 몸은 추모제에 있었지만 마음은 전부 담궈놓지 못했다. 그동안 대기업 특히 재무팀에서 2년간 근무하며 회사 전체의 이익을 항상 먼저 생각했고 산재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외면했다. 아니 솔직히 매일 닥쳐오는 내 일을 하느라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외면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이 습관적인 행동의 결과 지금 이렇게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알맹이 빠진 모습이 됐다. 나는 이곳에 왜 서있는 것일까. 마음은 위로하고 있지만 내 마음이 과연 뜨거운지 계속 반문했다. 마른 나뭇가지엔 절대 꽃이 피지 않을텐데 내 마음이 말라버린 건 아닌지 두렵기도 했다. 불합리를 보고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바로잡으려는 지금의 노력이 식은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돌이켜보면 난 황유미씨를 비롯한 산업재해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게 아니라 내 식었던 마음을 추모하기 위해 참석한 것 같다.
사진과 소송 진행상황을 보며 집으로 돌아왔고 머리 속이 뒤죽박죽 엉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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