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바뀌었다.
차분한 게 좋아졌고, 소리없이 듣는게 좋아졌다.
말하는 것보다 글 쓰는게 더 좋아졌고,
새로운 생각을 배우는 것보다 사람의 감정을 읽는게 좋아졌다.
원색보다는 파스텔톤이 더 좋아졌고,
노래방이나 놀이기구보다 여행이나 등산이 더 좋아졌다.
다양한 친구들과의 대화보다 소중한 친구와 몇마디가 좋아졌다.
혼자 남는게 두렵지 않아졌고, 어른의 지시를 구분할 줄 알게됐다.
좋아하는 것들은 더 선명해졌고, 아닌 것은 놓아주는 법도 알게됐다. 
 
음악을 들을 때 음계보단 가사가 귀에 들어온다.
돈을 버는 것보다 무엇으로 버는지가 더 중요해졌고,
다른건 다 양보해도 사랑은 양보할 수 없다는 걸 알게됐다.
자존심을 버리는 법도, 듣기 싫은 말을 웃으며 듣는 법도,
변해가는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법도 알게됐다.
예측이란건 사실은 무의미한 가능성의 수치일 뿐이며,
어둡고 위태로워도 작은 촛불 하나로 한 발자국 떼는 법을 배웠다.
꿈을 이루는 방법을 일러주는 것보다 진심으로 믿는게 효과가 좋다는 것과,
표현하고 묻는 것보다 믿고 기다리는게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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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보러 가는 길이 이리도 설렐 줄이야 

내가 지금 꿈이 아니라면 당신은 아마 그곳에서 웃으며 날 기다리고 있겠지.

만나게 될 그 순간 더 이상 다잡을 마음이 없다는 게 아쉽고 서운하지만

긴 이별의 시간 동안 내내 바라왔던 순간이야.

그 길 위에 머뭇거리고 주저했던 우리의 마음이 더 넓고 풍요로워져있길 기도해.

그리고 함께 새로 걷게 될 인생이 기대되고 설레.

길고 길었던, 그리고 특별했던 시간들이 참 만족스럽다.

물론 그동안 완벽하진 않았어.

만일 완벽이란 걸 경험했다면 난 아마 지금 더 나은 걸 경험하지 못했을 꺼야.

그리고 완벽하면 재미없고 시시해. 안그래?

가자! 더 큰 세상으로. 대학도 졸업하고 직장도 구하고 수많은 난관을 겪어왔던 우리인데 앞으로 더 못할게 뭐가 있겠어.

 

항상 이 여행의 끝은 어딜까 생각해 이 길의 끝에 우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얼마나 멋지게 변신해 있을까 하고 말야. 근데 사실 우린 변하지 않을 것 같아.

여전히 처음 만났던 고유의 성질과 색과 빛깔을 비추고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난 그 색을 참 좋아하고 있을 것 같아.

잠깐의 시간으로 그 색이 변할거면 애초 우리의 색은 선명하지도 예쁘지도 않았을 거야.

물론 너무 선명해 눈이 부셔 피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색도 바래고 빛도 바랠 것 같긴 해.

난 그 색도 참 기대되고 예뻐.

개성이, 고유의 색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간과 함께 나이들며 흉내낼 수 없는 색 말야.

그게 정말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

도대체 얼마나 더 아픔과 슬픔을 겪고 즐거움과 환희를 느끼고 찾아오게 될까.

어쩌면 그게 인생의 참 재미일지도 몰라. 그래서 좋긴 해. 끝이 궁금하니깐.

 

다음이 상상되고 기대되는 그 순간을 떠올리면 코 끝이 달콤해지고 즐거운 웃음소리와 따뜻한 미소가 그려져.

길가엔 꽃이 피고 곳곳에 주렁주렁 열매가 열린 나무들, 그리고 나를 따스하게 바라보는 당신의 얼굴과 귀여운 아이들과 동물들이 상상돼.

다치고 멍들었던 마음들이 살아온 시간을 얼룩지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

그냥 단순한 삶의 일부인 것 같아. 빛과 어둠은 언제나 찾아오고 존재하는 자연의 섭리니까.

싸울 땐 싸우더라도 돌아서면 잊었었고 다시 웃었어. 그럼 됐어. 함께 웃을 때 그저 즐겁고 좋으면 된거야. 그리고 다시 두 손 놓지 않고 잡으면 돼.

 

당신은 나의 최고의 파트너야. 이 여정에서 누구보다 빛났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야. 항상 지나고, 끝나고, 이런 생각이 드는게 미안하고 웃기지만 말야.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어린 면이, 부족한 면이 처음에 내겐 어색하게 다가왔을 지도 몰라.

하지만 그 면면이 담고 있는 생각과 배려가 느껴질 때면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이 느껴져 감동하곤 해. 내가 사랑으로 보듬고 아껴주지 못했던 마음 한켠이 미안할 뿐야. 나는 당신이 좋으니깐.

 

이 여행이 완전히 끝나 다시 오랜만에 마주보고 만났을 땐 그저 미소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자. 그럼 정말 어른이 된 거 맞겠지?

하늘의 태양과 어둠 속의 별과 달에게 받은 선물. 날 더 단단하고 굳건하게 만들어 줄 축복의 시간이야. 언제 또 먹구름과 폭풍우가 동반할지 몰라. 그래도 선선하게 두 눈 감고 감상할 당신과 나의 모습을 상상해. 흔들리지 않고 두 손 끝까지 꼭 잡자. 그럼 다음날 또 태양이 뜰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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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울기 시작했다. 검고 쭈글쭈글해진 손으로 얼마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만지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붉게 충혈된 눈, 누렇게 뻐드렁진 치아 사이로 하얀 입김이 피어오른다. 노인은 이제 같이 어울릴 곳도, 일할 곳도, 심지어 따뜻한 우유 한 잔 마실 돈도 없다. 자식들이 순간 떠오르지만 키우며 돌보지도 못한 자신의 체면이 퍼뜩 서질 않는다. 짐짝 마냥 불편해 할 자식들의 시선이 체면보다 더 괴롭다. 가을의 풍요로 세상은 밝게 물들었지만 노인의 마음에 찾아오는 겨울의 속도는 매섭도록 빠르기만 하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봄과 여름이 보였기에 노인은 더욱 서럽다. 자신의 어릴적 추억으로는 위로되지 않는, 찾아오는 겨울 앞에 마냥 초라하기만 하다. 돌이켜보면 노인의 인생에 가을은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자연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뿐. 여름의 생기로 겨울의 혹독함을 견디며 봄을 맞이했고 그건 계속 반복됐다. 하지만 지금 몸도 마음도 다시 반복할 수 없는 겨울은 찾아왔고 수확도 풍요도 없던 인생의 가을을 찾으려 기억을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었다.

 

일자리를 알아보러 동네 마을회관을 찾았다. 빳빳하게 코팅된 종이 위에 주름이 패인채 펜을 쥐고 있는 자신이 욕심이 가득해 보이기까지 하다. 옆에 놓인 TV에서는 연일 '노후복지'를 위한다고 머리칼 두꺼운 사람들이 나와 떠들어대지만 도대체 어디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고향에 있는 친구들처럼 농사라도 지었으면 많이는 못 벌어도 입에 풀칠만큼은 할 수 있지않을까란 생각에 후회도 든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노인 옆에 노란 개나리색 꽃 모자를 쓴 아이가 서있다. 손에는 종류별로 꺾은 단풍잎 세 개가 들려있고 여름에 산듯한 튜브 모양의 머리끈은 뒷 머리를 동여매고 있었다. 아이에게 시선이 간 노인은 이 아이에게 사계절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찾을 수 없었던 두 계절이 아이의 온 몸에서 공기 중으로 풍겨나왔다. 아이의 계절이 풍기는 공기를 잡고 싶었지만 메마른 손가락 사이로 맥없이 사라졌다. 멀뚱히 쳐다보며 웃는 아이의 눈을 보며 노인은 생각했다.

 

'너의 가을이 지난 뒤에는 나처럼 혹독한 겨울이 아닌 따스한 봄이 찾아왔으면.. 그렇게 눈을 감는 세상이 오기를' 맑은 아이의 눈동자 속에 노인의 미소가 스며들고 있었다. 

 

 내겐 어린 남동생이 한 명 있다.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마음이 여려 부모님 뜻을 크게 거스른 적도 없는 순한 동생이다. 9살이나 차이가 져서 우린 사소하게 장난치거나 또는 고민을 나누는 대화조차 없이 서로의 삶이 무탈한지 상태만 확인하는 정도로 살았다. 그렇게 나는 어느덧 26살이 되었고 동생은 수능을 임박한 수험생, 2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동생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로 끼니와 준비물을 챙기는 건 엄마의 몫이었고 사소한 장난을 치거나 동생의 투정을 받아주는 건 언니의 몫이었다. 나는 중간에서 동생을 위한 역할을 찾을 필요성도 모른 채 그냥 내 공부하고 놀기 바빴다. 그래서 동생과 나의 대화는 항상 이 닦았어?”, “옷 갈아입어야지”, “손톱 깎고, 먹은 것 치우고, 책상 정리 잘해이 정도였다. 항상 착한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따위의 시각으로 동생을 봤고 앞으로 살면서 필요한 자기절제를 중심으로 가르쳤다. 이런 나의 태도 탓에 남동생은 항상 내 옆을 지나갈 때면 이상하게 부모님보다 공손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남동생의 영어를 가르쳐주게 됐다. 원래 학생시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도 남동생은 안하고 남의 집 과외를 하거나, 집에서 가끔 봐줘도 커리큘럼만 짜주는 정도였다. 공부는 혼자 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철학과 동생에게 갖는 욕심이 커질까봐서였다. 그런데 웬일로 남동생이 나에게 영어를 배우겠다고 했다. 수능이 임박해서 조급해진건지 나의 실력을 믿는 건진 모르겠지만 남동생의 호의적 태도가 고마워 나도 그러기로 했다. 시작하는 날, 방 문을 닫고 불이 환한 스탠드 앞에서 둘이 펜을 들고 수능 스타트 영어를 들여다봤다. 나도 동생도 왠지 모를 어색한 긴장감에 같이 슬며시 웃음이 흘러 나왔다. 한 문제씩 동생의 해석을 들으며 생각이 들었는데 왠지 이 순간이 남동생에게 좋은 누나가 될 수 있는 기회같았다. 최대한 친절하게 들어주고 최대한 따뜻하게 풀이해주면 동생이 왠지 나를 따뜻한 누나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챕터를 끝내고 나니 남동생이 내게 말했다. “누나 뭔가 다른데? 고마워 누나.” 칫 감동이었다. 내가 동생이게 이런 누나일 수 있었던가? 우리가 언제 이렇게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열중한 적이 있었던 가? 수능이라는 생각만 해도 압박이 느껴지는 단어를 앞에 두고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펼쳐질 줄 몰랐다. 오히려 순간 수능에게 감사하는 이상한 마음까지 생겼다 

   더 감사한건 남동생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남동생은 더 이상 내가 관리해주고 상과 벌을 줄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성숙하고 생각이 깊은 진지한 아이란 걸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나보다 더 성숙했을 지도 모른다. 내가 나이가 더 많고 경험을 많이 해봤단 이유로 이래저래 늘어놨던 말들이 잔소리 뿐일 수 있었다. 동생은 영어를 한 문제를 풀어도 문제를 맞춰야겠단 생각보다 마치 국어책을 읽듯이 감정을 음미하는 듯 했다. 순간순간 한 문장에서 펼쳐지는 작은 감정까지도 캐치해냈고 필자의 마음과 주인공의 심리를 느끼는 법을 알았다. 난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으로 한 교수님께 그 방법을 기술적으로 배우며 느꼈던 걸 남동생은 내가 조금만 설명해주니 바로 알아듣고 적용했다. 어릴 때부터 동생의 마음이 여려서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그 여린 맘이 사람을 이해하는 섬세한 마음으로 바뀌어 장점이 된 거였다. 작은 지문하나까지 섬세하게 챙겨가며 읽는 동생의 조용히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내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오늘은 동생의 영어 시험 날이다. 60점 대였던 동생이 한 개 틀려서 왔다. 동생은 마음으로 하는 공부가 머리로 하는 공부보다 성취도, 결과도 좋다는 걸 증명했다.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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