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과 창작

 

어릴적 들었던 힙합음악이 생각한다. 다른 음악을 듣다가도 힙합을 들으면 평소 잔잔했던 마음에 리듬이 생기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주어진 상황을 즐겁게 극복하는 음계, 그리고 회의와 자조와 비난이 섞여있지만 긍정을 생각하는 가사가 맘에 들었다. 힙합이 자주 검열에 걸렸는 이유는 바로 사회악과 사회의 모순 그리고 규범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그 비판이 생생히 드러난게 좋았다. 나 대신 누군가 시원하게 내뱉어주는 것 같았다. 
가사 속에서 우리가 보는 세상은 너무 비인간적이고 규범적이다. 학습된 틀에 박혀 무엇이 진실이고 솔직한건지 모르는건지 감추는건지 그저 보이는 껍데기에 신경을 쓴다. 이런 껍데기만 사라져도 분명 불필요하게 얼어붙은 감정이 풀리고 관계 속에 숨겨졌던 따뜻한 것들이 보일텐데. 
힙합이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 상처를 치유하듯 우리도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대중의 성숙한 의식이 필요하다. 또 창작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개인의 창작능력도 같이 길러져야 한다. 창작과 비평이 세상이란 시냇물 위에 단단한 징검다리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을 넘어 사회를 성숙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자신의 마음을 믿고 틀을 깨고 넘어서야 그 다음도 볼 수 있다.

 

2014.11

 

 

소설이 사실이 되어

 

  "형용사가 '이어', '이고', '이네'로 끝나는 부분 그부분이 어려워 고민이야ㅋㅋㅋ아후"
  소소한 대화가 왁자지껄 흩어진다. 공부를 가르쳐주는 선배, 커플처럼 보이는 따뜻한 두 남녀의 뒷모습, 시험으로 골치아파하는 여학생들, 그리고 그들 사이로 역시 고독을 씹는 학생들. 이걸 보는게 울 일은 아니다. 그냥 이성적으로 해결 가능하고 지식이 부족하면 공부하면 되고 돈 없으면 알바하면 되고 원하는 길이 아니면 다시 길을 찾아가면 되고 모든게 다 별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별의 아픔도 지나고 아무 일도 없고 아무 걱정도 없는데 그냥 눈물이 난다. 너무나 사소한게 그리웠었나. 이별하고 따뜻한 감정을 갈구하고 애원하며 쏟았던 눈물이 아니라 허무해서 나는 눈물인가. 답답해 괴로워하고 보여주고 매달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이해하면서 내 감정에 충실했는데. 사랑때문에 눈물을 흘러본 게 처음이었지만 그래도 그 눈물이 아깝진 않다.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슬픔이 사실이 되어 돌아왔지만.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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